큰 고기가 물렸다고 덤비면서 갑작힘을 주면 물고기는 낚시끝에 찢긴 제코를 남겨놓고 도망친다우. (장편소설 《참대는 불에 타도》)
갑작힘은 ‘갑자기 쓰는 힘’이다. ‘갑작’은 ‘갑작스럽다’에서 확인되는데 ‘갑작’에 대한 남한과 북한의 견해가 다르다. 남한에서는 어근으로 보고, 북한에서는 부사로 본다. 부사 ‘갑자기’의 준말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의 어근은 자립하지 못하는 어근을 말한다. 어근을 학술적으로는 ‘자립 어근’과 ‘비자립 어근’으로 나누지만, 일반적으로 '자립 어근'을 단어라고 하고, 어근은 ‘비자립 어근’(문장에서 단독으로 쓰거나 조사와 결합하여 쓰지 못하는 말)을 가리킨다.
북한어에서 용언을 수식하는 부사로 ‘갑작’을 쓰는 일은 드문 것으로 보인다. 사전에 예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어에서 ‘갑작’은 주로 명사나 명사형과 결합하여 낱말을 만드는 기능을 한다. 이 사실을 고려하면, ‘갑작’은 ‘낱말을 만드는 어근’(단어 형성 어근)일 것으로 생각된다. ‘갑작’이 결합된 말로는 갑작달리기(급출발), 갑작바람(돌풍), 갑작변이(돌연변이), 갑작부자(벼락부자), 갑작비(갑자기 내리는 비), 갑작수(갑자기 꾸며 낸 수), 갑작죽음(돌연사), 갑작출세(벼락출세) 등이 있다. 이들 낱말은 대부분 ‘다듬은 말’로, 실제 북한어에서 정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갑작’과 ‘갑자기’가 같은 뜻이라는 사실만 알면 이들 낱말을 이해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최근 남한에서는 ‘급인사, 급유행, 급칭찬’과 같이 접두사 ‘급-’을 붙여 말을 만드는 유행이 있다. 접두사 ‘급-’은 1음절인 낱말과 결합하거나 고유어와 결합하면 어색해지는 문제가 있으므로 ‘갑작’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
‘갑작’이 결합된 낱말은 북한의 ‘말 다듬기 사업’의 영향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조선말사전>(1960년), <현대조선말사전>(1968)에는 ‘갑작스럽다, 갑작스레’ 외에 ‘갑작바람, 갑작병’만 있는데, 1970년대에 와서 남한 사전에도 반영이 되었다. ‘갑작스럽다, 갑작스레’는 남북이 같이 쓰는 말이다.
재미있는 일은 1975년에 나온 <새 우리말 큰사전>(신기철, 신용철 공저)에서 ‘갑작바람, 갑작병’ 외에 ‘갑작사랑’을 실었다는 점이다. 이 사전에서는 ‘갑자기 하는 사랑’이라는 뜻풀이와 함께 예문을 싣지 않았고, 속담 ‘갑작사랑 영 이별’과 그 뜻풀이만 싣고 있는데, 이후 <우리말큰사전>(1991년 12월), <조선말대사전>(1992년 3월)에서도 추가된 내용 없이 다루었다. ‘갑작’이 결합된 낱말 가운데 남한에서 사전에 추가하여 북한 사전에 수용된 말은 ‘갑작사랑’이 유일하다.
북한에서 만든 새말은 1980년대 이후의 사전에 반영되었다.
<현대조선말사전> 2판(1981)에서는 ‘갑작달리기, 갑작바람, 갑작변이, 갑작변이설, 갑작병, 갑작부자, 갑작수, 갑작죽음, 갑작흐름, 갑작끓기’가 추가되었고,
<조선말대사전>(1992)에서는 ‘갑작변이고정, 갑작변이종, 갑작변이유발, 갑작비, 갑작사랑, 갑작졸부, 갑작출세’가 추가되고,
<조선말대사전> 증보판(2006)에서는 ‘갑작벼락, 갑작변이률, 갑작변이체, 갑작변이육종, 갑작푸닥거리, 갑작힘’이 추가되었다.
‘갑작’이 ‘갑자기’와 같은 뜻이라는 것만 알면, 각 낱말의 뜻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북한의 사전에 지속적으로 낱말이 추가되는 것을 보면, ‘갑작’의 조어력(말 만드는 힘)이 꽤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